마른 체형이면 고지혈증 걱정은 없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 지인 중에 체지방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른 체형인데도 20대부터 고지혈증 약을 매일 챙겨 먹는 분이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가족력이 원인이었고, 이 이야기를 계기로 고지혈증의 원인이 단순히 식습관만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마른 사람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고지혈증이라고 하면 흔히 기름진 음식을 즐기는 비만 체형에게 나타나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상지질혈증(dyslipidemia)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여기서 이상지질혈증이란 LDL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이 과도하게 높거나, 반대로 HDL 콜레스테롤이 지나치게 낮은 등 혈중 지질 성분이 비정상적인 패턴으로 분포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고지혈증은 사실 이 이상지질혈증의 한 유형일 뿐입니다.

이상지질혈증은 원인에 따라 크게 일차성과 이차성으로 나뉩니다. 그 중 일차성의 대표적인 원인이 바로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Familial Hypercholesterolemia, FH)입니다. 여기서 FH란 특별한 기저 질환 없이 유전적인 콜레스테롤 대사 이상으로 인해 LDL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유지되는 유전 질환을 말합니다. 상염색체 우성 유전 방식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부모 중 한 명만 이 질환을 가지고 있어도 자녀에게 유전될 확률이 50%에 달합니다.
제 지인이 바로 이 경우였습니다. 아버지가 이 질환을 가지고 계셨고, 본인도 20대 초반에 혈액검사에서 이상 수치가 나와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몸에 지방이 없어도 혈관 속에서는 LDL 콜레스테롤이 쌓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이야기를 주변에 꺼내면 "그래도 뚱뚱하지 않으면 괜찮지 않아?"라는 반응이 대부분인데, 그게 가장 위험한 오해입니다.
FH가 무서운 이유는 나이와 상관없이 심혈관계 합병증이 일찍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동맥경화(atherosclerosis)란 LDL 콜레스테롤이 혈관 내벽에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혈관이 두꺼워지고 좁아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FH 환자는 어릴 때부터 이 과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남성의 경우 20대에도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이 발생할 수 있고, 60세 이전에 이미 절반 이상의 환자가 심혈관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FH를 의심해야 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 공복 혈액검사에서 총 콜레스테롤 290 이상 또는 LDL 콜레스테롤 190 이상
- 60세 미만의 직계 가족 중 심혈관질환(협심증, 심근경색) 병력이 있는 경우
- 아킬레스건이나 무릎, 팔꿈치 등에 황색종(xanthoma)이 관찰되는 경우 — 황색종이란 피부나 힘줄 아래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되어 생기는 결절 형태의 피부 병변을 의미합니다
- 눈에 각막 환(corneal arcus)이 나타나는 경우 — 각막 환이란 각막 가장자리에 지질이 쌓여 흰 고리처럼 보이는 소견을 말합니다
실제 겉으로 드러나는 황색종이나 각막 환은 전체 환자의 약 30%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수치 기준과 가족력 확인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우리 어머니도 고지혈증이 있어 병원에서 꾸준히 약을 처방받고 계시는데, 제가 이 내용을 알고 나서 저 자신도 한 번 제대로 검사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차성 이상지질혈증, LDL과 중성지방을 올리는 원인은 따로 있다
FH처럼 유전적 원인이 아니더라도 고지혈증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차성 이상지질혈증은 어떤 지질 성분이 높은지에 따라 원인이 달라진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LDL 콜레스테롤(저밀도 지단백 콜레스테롤)이 상승하는 경우와 중성지방(TG, triglyceride)이 상승하는 경우는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LDL 콜레스테롤이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며, 혈관 내벽에 침착되어 동맥경화를 유발하는 주된 원인 물질입니다. 이 LDL을 높이는 원인으로는 비만, 운동 부족, 기름진 식단 외에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있습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상태에서는 LDL을 세포 안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체 수가 줄어들어 혈중 LDL 농도가 자연스럽게 높아집니다. 일반적으로 생활 습관 문제로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호르몬 이상이 원인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중성지방(TG)이란 우리 몸에서 에너지로 사용되고 남은 칼로리가 지방 형태로 전환된 것으로, 수치가 지나치게 높으면 췌장염이나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높입니다. 중성지방을 특히 크게 올리는 원인 중 하나가 음주입니다. 알코올은 간에서 지방산의 산화를 억제하고 합성을 촉진해 중성지방 수치를 급격히 끌어올립니다. 탄수화물 과잉 섭취, 경구 피임약,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 쿠싱 증후군 같은 질환도 중성지방 상승의 원인이 됩니다.
제가 이 부분을 알고 나서 달라진 게 하나 있습니다. 전에는 검진 결과에서 그냥 "고지혈증"이라는 말만 들으면 막연하게 기름진 음식만 줄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LDL이 높은 건지 TG가 높은 건지에 따라 식단 조절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LDL 콜레스테롤이 높다면: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이 많은 기름진 음식을 줄이는 것이 핵심
- 중성지방(TG)이 높다면: 음주와 설탕, 정제 탄수화물 섭취를 먼저 줄여야 함
국내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심장 질환은 암에 이어 국내 사망 원인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수치를 보면 혈관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대한이상지질혈증학회에서도 가족력이 있는 경우 젊은 나이부터 지질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이상지질혈증학회). 20~30대라도 부모님 중 한 분이 60세 이전에 심근경색이나 협심증을 진단받은 적 있다면, 체형과 상관없이 혈액검사를 한 번은 받아보는 것이 맞습니다.
요즘 뉴스에서 젊은 나이에 갑자기 쓰러졌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게 됩니다. 서양화된 식습관, 야식 문화, 음주가 결합되면 혈관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나빠질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야식 문화와 음주 문화를 생각하면 중성지방 관리가 특히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적당한 운동과 식습관 개선은 기본이고, 유전적 요인이 있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병원에서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혈관은 한번 나빠지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이상이 의심될 경우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